은수(이영애)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상우(유지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투지도 않았다. 붙잡지도 않았다. 다만 물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 질문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슬프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낯설기도 했다. 변한 것이 이상한 건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이 이상한 건지.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느냐는 상우의 믿음은,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순진하다 못해 어수룩해 보인다. 유아적이다. 그런 생각은 사랑의 이상이 아니라 신화에 가깝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상식이자 당위로 통했던 그 시대의 믿음.
상우는 아직 그 시대 안에 살고 있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봄은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로 기울고, 사람은 늙고, 어제의 확신은 오늘의 의심이 된다. 장자는 그것을 화(化)라고 불렀다. 변화는 만물의 본성이지, 예외가 있는 법칙이 아니다.
그런데 상우는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순수했다. 문제는, 그 순수함이 상대에게는 때로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것이다. 변하면 안 된다는 믿음은, 변해버린 사람에게 죄책감을 요구한다. 사랑이 식었다는 사실보다, 식어서는 안 됐다는 당위가 사람을 더 괴롭힌다.
은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사랑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상우보다 조금 일찍 알아버린 사람. 상우는 아직 봄이었는데, 은수는 이미 가을이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두 사람은 다른 계절 안에 있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어긋난 것이다. 계절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이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항변이었다. 상우가 자신의 세계관 전체를 걸고 던진 외침이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 믿음 위에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은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 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납득하는 일은 없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을 보는 방식의 문제니까.
무너진 상우 곁에, 할머니가 앉는다.
마루 끝에 나란히, 말없이… 한참 그러다가 할머니는 손자의 뒤통수를 지그시 쓰다듬으며 묻는다.
“힘들지?”
그게 전부였다. 설명도 없고, 가르침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마디를 더 얹는다.
“버스 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긴 생을 살아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체념과 너그러움이 담겨 있었다. 철학책 어디에도 없는, 그냥 살면서 터득한 지혜. 버스는 또 오고, 봄날도 또 온다는 것을 할머니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상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 손의 온기가, 항변보다 더 깊은 곳까지 닿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다시 만난 은수는 다방에서 화분 하나를 내밀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께 드리라고. 이런 걸 곁에 두면 좋다고.
은수는 몰랐다. 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상우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는지, 하지 않기로 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화분을 받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방을 나와 나란히 걸었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그때 은수가 먼저 말했다.
“우리 같이 있을까?”
상우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대답 대신, 들고 있던 화분을 조용히 은수에게 돌려주었다.
“갈게.”
그게 전부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또다시 오래 멈췄다.
화분을 돌려주는 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이미 없고, 이 화분이 가야 할 곳도 이제 없다. 그러니 당신이 가져가라. 말로 하면 너무 길어질 것들을, 상우는 그 작은 화분 하나에 다 담았다.
그렇다면 이때의 상우는, 이미 가을이었던 걸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울부짖던 그 사람이, 어느새 말 대신 화분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봄이었던 상우가 가을을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 가을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은수는 화분을 받아 든 채 돌아서 헤어진다. 다시 봄이 온 건지, 무언가를 놓친 건지, 그녀의 표정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낭만적이고 행복하기만 했던 사랑의 소용돌이는 지나가고, 상우에게 드디어 자신을, 사랑을, 인생을 되돌아볼 어느 날이 찾아온 것이다.
마지막 장면, 보리밭에서 눈을 감은 채 바람 소리를 듣는 상우. 그는 거기서 무엇을 들었을까. 녹음기에 담아두었던 은수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그냥, 바람이었을까.
언젠가 그는 녹음기를 꺼야 할 것이다.
봄날은 간다. 다시 봄은 올 것이다. 그래도 봄날은,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