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나라, 다른 시장 — 지방은 미분양인데 서울만 분양이 잘되는 이유
최근 지방의 한 아파트 외벽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1억 이상 파격 할인.' 준공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팔리지 않는 아파트다. 같은 시간, 서울에서는 청약 경쟁률 수백 대 1이 뉴스도 아닌 일상이 되어 있었다.
같은 나라, 같은 시간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2. 숫자가 말하는 현실
2025년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약 6만 9천 가구. 이 중 준공 후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은 약 2만 8천 가구로,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부분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서울은 분양만 하면 마감이다. 2017년 이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약 83.8%, 같은 기간 지방은 고작 5.2%에 그쳤다. 16배 차이다. 이제 이 격차는 '양극화'라는 단어로도 부족해졌다. '단절'에 가깝다.
3. 결국, 사람이 없다
지방 미분양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그 원인은 '생산성 격차'다. 2005년에서 2019년 사이 수도권 생산성은 20% 상승한 반면, 비수도권은 12.1%에 그쳤다. 생산성이 높다는 건 곧 양질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사람이 오는 게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아파트가 팔리는 것이다.
4. 공사비는 오르는데, 살 사람은 없고
지방 미분양의 두 번째 이유는 역설적이다. '분양가가 너무 높다.' 공사비는 전국이 동일하다. 레미콘값, 철근값, 인건비는 서울이든 대구든 똑같이 뛴다. 서울은 시세 차익 기대감이라도 있지만, 지방은 입주 후 시세가 분양가보다 낮아질 위험, 이른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크다.
5. '똘똘한 한 채'가 만든 블랙홀
다주택자 규제 강화 이후 자산가들은 지방의 여러 채 대신 서울 핵심지의 '똘똘한 한 채'를 선택했다. 가계 자산의 75% 이상이 부동산에 쏠린 나라에서, 자산 가치가 보장되는 서울로 돈이 흐르는 건 자본주의의 생리다.
6.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느끼는 것
20년간 재개발·재건축 현장을 다니며 느낀 건, 부동산은 결국 '사람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단순히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갈 '방법론의 격차'이기도 하다.
7. 해법은 있는가
단기 처방은 없다. 핵심은 '생산성'이다. 비수도권 거점도시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기업과 사람이 실제로 이동해야 한다. 건물만 세우고 사람은 주말마다 서울로 가는 세종시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 집을 지어놓고 왜 안 팔리냐고 묻는 건, 질문 자체가 틀린 거다.